<목사일념3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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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아주 가끔씩 나는 왜 이렇게 형통하지 못할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얼핏 들으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고난을 뒤돌아 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기준 하는 삶과 전혀 동 떨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내 속에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왔을까?
내 속에는 항상 세상의 형통을 멀리했고 진정한 형통을 추구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진정한 신앙은 형통하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인 사람은 세상에서 형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영적이지 못한 불신자나 세상 사람들이나 초신 자들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형통한 사람 진정한 행복한 사람은 자기 일에 형통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진정한 형통을 위해서 자기를 버린다 했다.
자기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자기를 버릴 수 있을까?
스데반이 자기 일에 형통했다면 그는 바로 순교의 영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순교라는 것은 형통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순교하는 것이다.
형통할 수 없기 때문에 순교하는 것이다.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히고 저리 가다 찢기고 매 맞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진정한 형통은 형통하지 않는 것이다.
순교는 형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형통하고 하나님과 인연이 끊긴 것보다 세상에서 모든 일에 끊기고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형통이다.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가 인연이 끊겨 있는 것은 너무 지나치게 이 땅에서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랐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주 안에서 형통하기를 바라지 이 지구 안에서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일의 형통을 생각하다 사탄에게 사로잡혔다.
순간 하나님과 인연인 끝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대를 걸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 안에서 형통하기를 원했다.
오늘 내가 가진 것을 내일 주님이 포기하기를 원하시면 당장 포기하고 오늘 내가 지기 힘든 것을 네 가지라 하면 당장 짊어져야 하는 것이 나의 삶이다.
사람들은 주 예수를 잘 믿으면 이 땅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편하게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정말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이걸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진정한 형통한 사람이라 여기고 있다.
내 영혼아 형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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