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의 표어" 성경 일독하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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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성경을 일독하자! 매년 이렇게 신년 첫달을 성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저희 목회요 저와 함께 중국을 선교하는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시작부터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살기때문에 더 가까이 하고자 함입니다. 성경을 일독하려고 여러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떤때는 성경낭독자를 세워서 일주일 동안 일독도 해봤고 녹음된 성우들의 음성을 통해 낭독을 따라 읽으며 일독도 해봤고 성도님들이 대표로 나서서 낭독하면서 일독도 해봤고 교육자들이 대표로 나서서 낭독하며 일독도 해봤습니다. 어느해는 한달내 토요일만 모여서 일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꼭 일독을 못할때는 신약만 읽기도 하고, 시편만 읽기도 하고 모세 오경만 읽기도 하고 사복음서만 읽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독에대한 압박때문에 자칫 형식으로 흐를 수 있는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개개인 또는기관별로 지역별로 가족별로 구역별로 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1월은 반드시 성경을 일독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가 아주 친해야 하기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하나님 말씀과 친하자! 친한 사람은 무슨 말씀이든지 복으로 받고 보약으로 받는데, 친하지 않으면 짜증나고 부담스럽습니다. 말씀이 부담스러우면 친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독은 평생동안 한번도 못할수도 있습니다. 말씀과 친해지면 해마다 쉽게 일독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다가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아브람함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독자를 지시하는 곳에서 번제로 드리라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짜증내지 않고 그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완전히 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벗이라 하는 대목을 읽을때는 정말 부럽습니다. 비밀을 말할 정도로 친했습니다. 하나님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들어오지 않으니 능력이 없습니다. 친한 친구는 구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마치 구걸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 처럼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징징대며 다닙니다. 병 고치는 것은 구걸이 아니라 권한입니다. 그런데 권한으로 느끼지 않고 부담으로 느낍니다. 다른 것은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데 이중적입니다.
성경을 읽는 중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집중해서 잘 들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게 생명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육신이 살아있을 때는 돈이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좋은 옷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돈을 가질래, 목숨을 가질래 하면,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요즘처럼 집에대한 집착하던때가 있었나 싶을정도로 영끌이라는 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신종용어들이 나올만큼 집착하는 것을 보고 목숨보다 귀한것이 집이구나 착각할만큼 혼미해져 있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다시 살 수 없는 것이 목숨입니다. 그런데, 목숨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영이 사는 생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육은 흙으로 만들었으며 영은 하나님의 숨인 생령입니다. 영은 생명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만약에 영이 생명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지옥에 간다는 뜻입니다. 영이 살아야 지옥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목숨보다 더 중요합니다. 세상은 자꾸 변해갑니다. 세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다 속이는 것입니다.
속이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솔직히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목숨보다 생명이 귀하게 여겨지시는지요?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 영만이 알고 있습니다. 내 영이 아는 것이 육체로 전달될 때 이것을 체험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신앙인의 간증은 이 경험과 체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내 영혼만이 가능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체험하게 되는 것은 내 영혼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친구가 되게 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으며 3년 내내 내말은 영이다 생명이다 하셨으며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체험의 신앙입니다. 자기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영이 가장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육체는 감각이 있고, 감정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절대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말씀받아서, 육체에 전달해야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하지만, 자기 영혼으로부터 육체에 전달되지 않으면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육체는 자기 지식, 경험, 세상의 문화, 모든 것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체험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일독할때도 성령을 의지해서 붙들고 읽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사람이 여러계통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나옵니다.
말씀을 체험하는 사람들을 보면 육신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다수 입니다. 십자가의 강도, 간음하다 붙들린 여자, 민족의 배반자 세리, 문등병자, 중풍병자, 반대로 바리새인 사두게인 서기과 제사장 지식층들 지도자들 고위직들은 자기 몸을 만지는 것도 허락치 않고 소리쳐 갈급함도 보이지 않는 고고함의 모습들입니다. 무슨 체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100독을 한들 체험이 되겠습니까? 일천독을 한들 체험이 되겠습니까? 말씀을 글로 씌여져 있지만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목사의 덕담으로, 종교인으로서의 덕담으로 듣는데 어떻게 체험이 되겠습니까?
말씀이 나를 명령하고, 나를 꾸짖고,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고, 달려가게 해야합니다. 성경일독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으로만 받아들여야 체험이 됩니다.
예수께서 세례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이 임하셔서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광야는 맹수가 기다리고 있고, 마귀가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일 충만하실 때,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짐승을 채찍질해서 몰듯이 몰아냈다는 말입니다.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저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계시를 받은 예수를 성령이 몰아내십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일하시다가,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고, 아시는 말씀을 다 체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을 다 체험하신 것입니다. 구약을 읽을때 선지자나 예언자들의 말을 예수는 몸소 다 체험하신 것입니다. 체험한 것을 쏟아내 것이 신약입니다. 예수님이 체험한 말씀이 복음서입니다. 복음을 체험한 제자들이 쏟아낸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체험을 이 땅에 세운것이 교회입니다. 그 체험을 실천하는 것이 서신서들입니다. 마지막은 우리도 그와 같이 영원한 영생을 얻는다는 소망이 계시록입니다.
튼튼인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력만 늘려가는 종교인 행세는 다 쓰레기로 버리고 영으로 받아들여 육신으로 체험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체험하셨습니다. 1월을 그냥보내지 말고 각각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하나님과 가까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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